콘스탄티우스 황제(337~361)

콘스탄티누스의 맏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 둘째; 콘스탄티우스, 셋째; 콘스탄스

조카 

플라비우스 달마티우스(콘스타티누스의 이복동생)의 아들들; 달마티우스, 한니발리아누스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또다른 이복동생) ; 갈루스, 율리아누스 ; 에우세비우스 주교에게 맡겨짐.

 

모두 살해됨 (삼형제 빼고) 배후는 콘스탄티우스? 갈루스, 율리아누스는 너무 어려서 살아남음.

제국 삼분할 ; 20세 19세 17세 아들들.

콘스탄티누스 2세는 북아프리카 지배권을 놓고 막내 콘스탄스와 격돌, 패배, 340년 살해됨

340~350년 까지 10년동안 제국의 2/3(서방~이탈리아, 북아프리카)는 콘스탄스, 1/3(동방)은 콘스탄티우스가 지배.

콘스탄스는 부하 마그넨티우스와 그 추종자들에게 살해당함(30세)

콘스탄티우스는 351년 갈루스는 부제로 삼음.

콘스탄티우스와 마그넨티우스 격돌, 콘스탄티우스 승리, 353년 마그넨티우스 자결.

환관 에우세비우스 등용. 갈루스, 콘스탄티우스에게 29세때 포악한 성격때문에 처형당함.

율리아누스, 부제로 임명되 24세. 최전선 알프스(라인강 유역)으로 파견. 황후 에우세비아의 보호.

기독교 우대 정책, 세금 면제, 로마의 전래 종교 배척.

율리아누스, 가리아 지역 게르만족과 싸워 이김. 부하들, 그를 따르기 시작. 율리아누스, 스트라스부르 전투 대승, 알레마니족 격파 357년.

콘스탄티우스는 도나우강 유역 야만족 격퇴후 로마에서 성대한 개선식.

율리아누스, 갈리아 지역 다스리고 세금 낮춤, 갈리아 부흥.

율리아누스 황제 시대 (361~363)

359년 사산조 페르시아, 아미다 공격, 73일만에 함락시킴 (중동의 로마 도시)

콘스탄티우스는 서방의 부제 율리아누스의 군대를 페르시아로 차출 명령.

서방 군대들은 율리아누스를 정제로 추대. 콘스탄티우스, 페르시아와 강화맺고 율리아누스 토벌하기로 함.

갑자기 쓰러져 병사, 43세. 율리아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음.

율리아누스, 황제가 되어 콘스탄티노플 입성, 361년.

환관들 내쫓음, 황궁 축소화. 반기독교 정책 펼치. 배교자 율리아누스라 불리움.

모든 신앙의 존재를 다시 공인.

기독교도들이 파괴한 그리스, 로마 신전 재건. 유대교 신전도 재건. 전문 제사장 임명.

안티오키아에 머물며 여러 저작들 남김 (미소포곤).

361년 페르시아로 공격. 수도 크테시폰 근처까지 들어가서 첫 전투 벌어짐. 31세로 페르시아군과 전투중 전사함. 참 철학자.

후임은 기독교도인 요비아누스(황제의 호위대장), 페르시아와 강화.

모든것을 율리아누스 이전의 상태로 되돌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가는 길인 364녀 정초에 급사.

후임 황제는 발렌티니아누스(43세), 게르만인. 순수 무인 출신. 기독교도.

암브로시우스 주교 (374~397)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시대. 취임한달후 친동생 발렌스를 공동황제로 임명 (36세)

형은 서방, 동생은 동방 맡음.

동방은 안정적 ; 페르시아가 평온했기 때문.  서방은 야만족으로 계속 피해. 발렌티니아누스가 계속 싸움. 그들의 저지, 성공.

발렌티니아누스, 375년에 54세로 급사.

아들 그라티니아누스가 서방을 계속 맡았고 이복동생 발렌티니아누스 2세(발렌스)는 이탈리아 반도르 맡음.

동방의 훈족에게 밀려난 고트족들이 로마 도나우강 유역으로 몰려들어옴. 처음에는 단순 이주였으나 다시 야만족화.

발렌스 황제 군사이동시킴 트라키아의 하드리아노폴리스에서 로마군과 고트족 격돌, 로마군 참패, 발렌스황제 50세로 전사.

그라티아누스 황제, 에스파니아에 있던 테오도시우스를 불러 제국 동방을 맡김. 테오도시우스 부친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시절 명장이었으나 모함받아 어렸던 그라티아누스가 사형에 서명함. 테오도시우스도 대제로 불리우는 황제, 30대 초반.

테오도시우스, 동방에서 군사들 강제징집. 고트족 격파, 로마로의 이주 허용, 로마군 입대 허용.

두 황제 모두 친 기독교 정책.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영향.

암브로시우스 주교 ; 로마태생, 수도 장관의 맏아들로 330년 출생. 43세때 밀라노지방 장관, 아리우스파와 삼위일체파(아타나시오스파)의 싸움에서 삼위일체파가 그를 주교로 선추, 기독교로 개종.

전 재산을 교회에 기증, 아리우스파, 삼위일체파 모두 뭉침.

뛰어난 교양과 품성으로 황제에게 영향 끼침, 고문 역할.

테오도시우스 황제, 이단 배척, 이단; 아리우스파 (테오도시우스, 암브로시우스 주교 모두 삼위일체파)

이교 배척, 그라티아누스 황제, 최고 제사장 거부.

여사제 없애고 포로 로마노의 신전에 있던 성스러운 불도 꺼버림. 신전의 유지비를 충당해온 재원도 몰수, 승리의 여신상 철거

383년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브리타니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령관 막시무스의 공격을 받고 24세에 살해됨.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동방, 서방 모두 다스림. 막시무스 반란 진압.

이교를 사교로 간주, 탄압. 모든 신전을 교회로 바꿈. 수요가 없는 신전은 파괴. 388년 로마제국의 국교로 기독교 선택.

주교가 황제보다 위의 자리가 됨.

테오도시우스, 395년에 48세로 병사. 암브로시우스, 2년뒤 67세로 사망. 테오도시우스 사후 로마제국은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할됨.

395년 테오도시우스 세상 뜨면서

맏아들 18세 아르카디우스에게 동로마제국을

둘째아들 10세 호노리우스에게 서로마제국을 넘김.

각각 독립한 국가로 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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