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일주일동안에 다 읽은 로마인7은 아우구스투스황제의 뒤를 이어 등극한 4인의 황제인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에 관한 이야기다.

소위 악명높은 황제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네명의 황제중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는 악명보다는 현제에 가까운 황제들이었으나 그 뛰어남을 오해한 일부 역사가들에게 악평을 받은 것으로 느껴지고 칼리굴라, 네로는 집정초반기는 현제의 이미지였으나 조금씩 퇴페해가며 말기에는 정말로 악덕한 황제들이었다.

 

이 네명의 황제들을 끝으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피를 이어받은 혈통의 왕조는 끝이나고 그후엔 혈통에 관계없이 등극한 갈바, 오토, 비테리우스의 3대 황제의 혼란기를 거쳐 베스파시아수스가 등극할때까지의 격동을 겪게된다.

초대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혈통을 상당히 중시하여 이 가계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을 황제로 우대하는데에 주력했다. 그래서 이 복잡한 가계도를 그려보았다.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사망후 본의아니게 유력 후계자들이 모두 일찍 사망하는바람에 2대 황제에 등극하는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들이다.

젊을때부터 전장에서 시간을 보낸 그야말고 유능한 무장출신이다.

그는 여러가지 선정을 베풀고 로마를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제정의 반석에 오르게 하지만 그의 생모이자 아우구스투스의 미망인인 리비아가 사망하고, 동생 드루수스의 아들이자 선망받았던 장수 게르마니쿠스가 사망하자 게르마니쿠스의 아내 아그리피나와 그 첫째아들인 네로(동명이인이다, 황제가 아님)와 두르수스(이도 동명이인)를 유배지로 유배시켜 사망케한다.

그는 별로 로마인에게 인기가 없었던 황제였던것 같다. 로마인이 좋아하던 검투사경기등을  하지 않았고 그의 첫사랑이자 첫번째 아내였던 밥시니아와 이혼(강제이혼)하고 아그리파의 아내였던 율리아와 재혼한 이후로는 여자와 유흥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 오히려 나폴리의 별장으로 내려가 칩거를 하면서 정치를 하여 전혀 인기가 없었다;;

결국 나폴리의 미세노 곶에 있는 별장에서 77세로 사망하고 원로원은 게르마니쿠스의 셋째아들인 칼리굴라를 황제로 즉위시킨다.

칼리굴라는 20대 중반의 젊은나이에 3대 황제가 되고 그가 사랑했던 누이동생 드루실라가 사망하며 각종 유흥과 놀이를 즐기는 황제가 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꾸민 누이동생 아그리피나와 율리아를 유배하며 원로원계급과도 대결상태에 들어가고 결국 28세에 근위대장 키시우스와 사비누스에게 살해된다, 그의 아내 카이소니아와 딸도 동시에 살해된다.

같은날 원로원은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클라우디우스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그는 4대 황제로 등극한다.

사실 클라우디우스는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고 평생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였다.

그는 국가 반역죄에 의한 처벌을 폐지하고 그 법률에 의해 벤토테네 섬에 유배되어 있던 칼리굴라의 누이동생 아그리피나도 로마로 돌아온다.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의 외항 오스티아에 새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하고 브리타니아 원정을 단행하며 본인도 직접 브리타이아에 갔다 오게 된다.

그는 못생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네번의 결혼을 하는데 세번째 부인이었던 메살리나는 옥타비아와 안토니우스의 딸로 밤마다 창녀촌에서 몸을 파는 행동을 하는 화냥녀였다. 메살리나는 결국 중혼죄를 짓고 클라우디우스의 비서관 나르키소스의 명령으로 살해되고 클라우디우스는 질녀인 칼리굴라의 누이동생인 아그리피나와 네번째 결혼을 한다.  그녀는 전 남편의 아들 네로를 데려온다. 클라우디우스에게는 브리타니쿠스라는 아들이 있었으므로 네로를 양자로 들이지는 않았지만 추후 브리타니쿠스는 황제가 된 네로에게 살해된다. 아그리피나는 간통죄로 코르시카섬에 유배되어 있던 철학자 세네카를 네로의 스승으로, 무술교사로는 부루스를 임명한다.

클라우디우스는 63세에 아그리피나에게 독살당한다(그런 설이 있다) 아그리피나는 상당히 욕망이 강한 여성이었는데 그가 아들 네로를 황제로 올리기 위해 남편을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네로가 5대 황제가 되며 등극하여 첫 5년동안은 정말 선정을 베푼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클라우디우스의 딸 옥타비아와 결혼한 이후로 또다시 포파이아 사비나를 사랑하게 되고 이를 반대한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바닥을 부실공사한 배에 태워 별장으로 보내드리지만 수영으로 살아남자, 해방노에를 시켜 결국 칼로 살해한다;;

그 이후로 네로는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도무스 아우레아라는 거대한 집을 착공한다. 이는 로마에 대화재가 난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서 사람들은 로마의 대화제가 네로가 저지른 소행이라고 믿게 된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수없이 많이 죽인다.

그러나 파르티아 아르메니아 사태를 코르불로를 중용해 외교적으로 해결하는등의 업적도 세우지만 네로는 노래하는 시인임을 자처하고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여 그리스에 가서 가수 공연을 하고 5년마다 한번씩 네로체전을 개최하는 등의 행태도 보여 인기를 잃어버린다.

여기에 대항하여 네로암살을 위한 시도인 베네벤토의 음모가 있었지만 발각되어 주동자들이 모두 처형되고 네로는 또 그리스로 여행한다.

그후 네로가 그리스에서 돌아와 가수경연대회 1등을 자축하는 개선식을 거행하자 에스파니아에서 72세의 장수 갈바가 다시 궐기한다.

로마시민들은 식량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것을 계기로 네로에게 반대하고 궐기하며 급기야는 원로원에서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고 근위대가 갈바를 황제로 추대한다. 네로는 로마 교외의 은신처에서 자살한다.

이로써 네로를 마지막으로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가문이 끊어지게 되며 로마는 다음황제로 갈바를 맞이하게 된다.

 

실제로 역사가가 평가한 악명높은 황제들이 사실은 꽤 선정을 많이 베풀었다는 사실...

역사가 무엇인가. 이것이 진실인가.. 여러가지 의문이 많이 들게 한 내용들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도 또한;; 작금의 역사가 과연 진실인가.

아이러니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를 100년후의 후손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진실은 오직 부처다.

사람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본인이 쌓아놓은 악업은 그대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몰라도 아니 몰라주고 역사에 파묻혀 진실이 은페되더라도 유일한 진실은

선업과 악업은 반드시 그 영혼에게 정확히 돌아온다는 것

이 세상 살면서 사람들의 평가, 역사의 평가를 받는데에 신경쓰는 것보다는 악업을 소멸하고 선업을 짓는데 신경쓰고 살아야한다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의미일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고 나서 다음생에 어떻게 태어나고 살아가는가.  역사의 평가,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닐것이다. 그건 사실 진실이 아닐 수 있으므로. 진실은 내가 쌓아놓은 선업과 악업 이것밖에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업을 전혀 짓지 않으면 좋겠지만... 지어놓은 악업은 그것이 악업임을 알고 반성하고 참회하고 이를 소멸시키기 위한 기도, 참선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일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끝까지 남는다. 다음생에서도...

현생에 사람들의 평가, 역사의 평가는 이 세상을 뜨면 아무 의미도 없고 모두다 사라져 버리는 것임을 알자. 오로지 끝까지 따라오고 의미있는것은 이 생에서의 나의 수행뿐임을, 그것이 모든 살아가는 것의 참 의미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역사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만, 그 역사가 진실이 아니라면 배울것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의미있는 단 하나의 진실은 이것뿐:: 마하반야바라밀~!!!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란 (2019.2.1~3.17)  (0) 2019.03.17
구르미 그린 달빛(2018.11.15~2019.1.1)  (0) 2019.01.02
로마인 이야기 6 (2018.8.20~9.12)  (0) 2018.09.13
노르웨이의 숲(2018.8.3~8.17)  (0) 2018.08.17
그리스인 조르바(2018.7.16~8.1)  (0) 2018.08.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