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4에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후로 군대를 이끌고 폼페이우스와 대결하기 위해 이탈리아 본토로 들어온다. 상당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되어 도저히 그 다음권인 로마인 이야기 5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로마인 이야기 5는 카이사르의 하편으로 너무너무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아~이래서 사람들이 로마인 이야기에 열광하는구나를 알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펴는 시간은 2주였지만 본격적으로 읽은 기간은 7월 9일 13일 14일 15일로 불과 나흘만에 한권을 독파할 정도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기원전 100년에 태어난 카이사르가 50세가 되던 기원전 50년, 그는 갈리아전쟁 8년을 끝으로 북이탈리아 속주로 돌아오고 원로원파들은 개혁파이자 제정을 주장하는 카이사르를 두려워하여 3두정치를 카이사르와 같이 했던 폼페이우스를 설득하여 본인들의 편에 서게한후 원로원 최종권고를 결의하고 카이사르와 대결하려했다.

카이사르는 호민관 쿠리오를 앞세워 대항하며 또한 기원전 49년 군대를 이끌로 "주사위는 던저졌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루비콘강을 도하, 본토로 진격한다.

여기에 카이사르파인 호민관 안토니우스가 합류한다.  카이사르의 대세에 눌린 폼페이우스와 대부분의 원로원들은 로마를 탈출하여 그리스로 건너가고, 골수까지 원로원파였던 그 시대의 지성 키케로도 로마를 떠난다.

이탈리아 전역을 석권한 카이사르는 기원전 48년 브린디스를 출항하여 폼페이우스와 대적하기 위해 그리스로 상륙한다.

결국 그 유명한 파르살로스 평원에서의 대전으로 카이사르는 압승하고 사망자 6천과 포로 2만 4천을 낸 폼페이우스는 패전하고 그가 과거 누려서 그의 후원자가 되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려다 렌툴루스와 함께 로마 병사에게 살해된다.

카이사르가 그리스 원정에서 폼페이우스와 대적할때 이탈리아 본국은 안토니우스에게 맡겼다. 카이사르 자신은 독재관, 안토이우스는 부독재관이었다.

카이사르는 그후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여 내분을 일으킨 클레오파트라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공동통치의 판정을 내리지만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카이사르군을 공격, 결국 카이사르에게 패하고 전사한다. 카이사르는 이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클레오파트라와 밀애를 즐긴다.

그후 소아시아에 상륙하여 카파도키아 지방의 젤라에서 파르나케스를 격파하며 남긴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로마에 개선하여 5년 임기의 독재관에 임명되고 그가 없는동안의 실정을 한 안토니우스를 나무랐다.

그후 남아있는 폼페이우스파를 척결하지만 대부분 죽이지 않고 포용하는 정책을 편다. 이것이 카이사르가 과거 술라때와는 다른 점이다. 술라는 살생부를 만들어 정적을 모두 잔인하게 살해하였으나 카이사르는 대부분 자기 편으로 끌여들였다. 그러나 이것이 추후 그가 살해되는 하나의 원인이기도 했다;;

그후 카이사르는 로마의 영웅이 되었다. 평생 독재관에 임명되고 각종 법률을 고치고 건물을 정비하고 달력을 새로 만들고 화폐를 만들고 세재를 개혁하는등 그야말로 독재관의 면모를 발휘하여 그가 개척하여 한없이 넓어진 로마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의 동료집정관에 안토니우스가 취임하고 카이사르는 2년동안의 파르티아 원정을 공식 발표한다. 파르티아는 카이사르의 심복 쿠리오가 패해 전사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해 3월 15일,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장인 폼페이우스 회랑에서 공화정제를 주장하는 보수파들인 브루투스 카시우스등 14명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카이사르 나이 55세 때였다

카이사르 살해자들은 당장 그 추후 대책을 발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분노한 시민들을 피해 은신하게 되고 동료집정관이었던 30대의 젊은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대권을 받으려고 움직인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죽기 몇달전 유언장에 자신의 후계자를 옥타비아누스로 지명한다. 옥타비아누스는 그 당시 18세의 청소년이었고 카이사르의 먼 친척이었으나 평소 그의 능력을 알아본 카이사르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고 전투력이 약한 옥타비아누스를 보좌하기 위해 그와 동갑인 아그리파를 옥타비아누스의 경호원으로 지명한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살해된 초기에는 공화정제 주장자들에게 온건한 태도를 취하며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마케도니아, 시리아 총독에 임명한다. 이는 일부 카이사르의 유지이기도 했다;;

기회주의자인 키케로는 안토니우스에 대한 탄핵연설을 하고 그리스에서 카이사르의 유언장 내용을 안 옥타비이누스가 귀국하여 안토니우스와 대결국면으로 들어간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남긴 유산을 옥타비아누스에게 주지 않고 본인이 착복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유지들을 돌아다니며 돈을 모아 군대를 결성한다. 로마는 대부분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알고 옥타비아누스에게 지지를 보낸다.

안토니우스는 북이탈이라 속주의 군사력을 장악하기 위해 북이탈리아 총독인 데키우스 브루투스(이 사람도 브루투스와 동명이인이고 카이사르의 암살자중 한명임)를 공격하고 옥타비아누스는 북이탈리아로가서 안토니우스를 공격한다. 안토니우스는 패하고 브루투스는 살해된다.

옥타비아누스는 집정관에 선출되고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을 얻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와는 달리 정적들을 철저히 없애버리는 술라와 비슷하였다.

그는 카이사르 암살자들을 추방하는 페디우스법을 설립하고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제 2차 삼두정치를 하게 된다. 그후 살생부를 발표하고 숙청이 시작되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연합군을 격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자결한다. 또한 안토니우스는 자신을 탄핵하자고 주장한 키케로를 살해한다. 그 시대의 지성 키케로는 결국 평생을 우유부단하게 살다 마지막 순간에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후 안토니우스의 제안으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제국의 서부, 안토니우슨 동부를 분담하기고 하고 갈라지지만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하려고 했던 파르티아 원정을 발표하고 준비하지만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지며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를 통치하려고 하고 이에 기겁한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옥타비아누스를 돕는다. 결국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그리스에서 일대 격전을 벌이는데 이것이 악티움해전이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안토니우스편에 같이 가담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무능과 판단잘못으로 결국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패해 알렉산드리아고 도망치고 옥타비아누스는 통치기구 재구축을 추진하면서 그들을 추격한다.

기원전 30년 안토니우스는 자살하고 옥타비아누스는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한다. 결국 클레오파트라도 자살한다. 이로써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고 이집트도 로마에 편입되며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에 개선하여 로마는 드디어 제정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제 1대 황제 아우구스티누스 황제가 된다.

 

아~~카이사르~~그는 500년동안 지속되어온 로마의 공화정체제를 제정제로 바꾸는 초석이었으며 로마를 위대한 제국으로 만들었으며 수없이 많은 로마인의 가슴속에 인간이 아닌 신의 경지까지 여기도록 했던 영웅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박정희와 비슷한것 같다. 18년간의 독재자였지만 나라를 발전, 부국의 틀안에 들여놓고, 자신은 심복에 의해 살해당한;;;

이 시대를 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다. 아니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격은 평등하되 인간의 그릇은 평등하지 않은것 같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같은 인간으로는 그 생명의 존귀함은 평등하지만 그 그릇은 달랐다. 카이사르는 한 나라 전체군대의 총 지휘자였고 한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안토니우스는 한 군단의 대장 그릇이었던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황제의 그릇이었다면 안토니우스는 그것보다는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장부였다.

누가 더 나은가~누가 더 영웅이었나~이건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들 자신들의 그릇에 맞게 자신들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한 시대를 살아갔던 인간들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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