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존 스타인벡의 1952년 작품으로 민음사 전집중 일부이니까 고전에 속하는 명 소설이다.

2010년 여름부터 읽기 시작하여 틈나는대로 조금씩 읽어서 2010년 11월 7일 다 읽었다.

독서의 감동은 물론 쉬지 않고 연속으로 단번에 읽어버리는 것이 좋겠지만 일과 업무에 피곤하고 그 이외의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는 나에게는 단숨에 독파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2011년에는 독서에 조금더 비중을 두기로 했고, 특히나 고전을 다시 한번 통독하는데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이 에덴의 동쪽은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라 과거 제임스 딘이 영화 주인공을 나왔던 것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고 그 번역 또한 뛰어나서(정희성) 잠시도 손에서 놓치기 싫은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퇴근후 평일은 일본어, 바둑 씨뮬 공부와 아이온 게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되므로 독서는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등 낮시간이 어느정도 될때 틈틈히 읽게 된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트래스크 가의 애덤 트래스크이다.

애덤의 아버지 사이러스 트래스크는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를 살면서 미 동부에서 군인으로 유명했던 부자였다.

물론 그의 아버지는 장교출신은 아니지만 평생 하사관으로 살면서 많은 돈을 모으게 된다.

아버지에게서 군입대를 종용받고 오랜기간 군에서 전쟁(아마도 맥시코와 인디언들과의 전쟁)을 경험하고 또한 이곳 저곳을 방랑했던 애덤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고향 코네티컷을 떠나 켈리포니아의 살리나스 계곡으로 이주해 온다.

그는 살리나스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을 구해 사랑하는 아내 캐시를 위해서 에덴동산 같은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할 꿈을 꾼다.

캐시는 타고난 악녀로 아름다운 외모속에 야수의 잔혹성을 감추고 있는 사악한 여자이다. 그녀는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죽인데가 자기를 구해 준 애덤과 결혼해서는 그 이복동생인 찰스를 유혹하여 성관계까지 갖는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쌍둥이 형제는 칼과 아론을 낳은 후 권총으로 애덤을 피격하고 집을 나가 유곽의 창녀가 된다.

그런 다음 캐시에서 케이트로 이름을 바꾸고는 자기를 친딸처럼 사랑해준 유곽의 주인 페이를 독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녀는 창녀의 자질을 발휘하여 명성과 부를 쌓는다.

그러나 아내의 배신으로 충격을 받은 애덤은 실의에 젖은 나날을 보낸다.

애덤 주위에는 다른 한 가정이 그와 친분을 쌓았는데 그가 바로 새뮤얼 해밀턴이다.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해밀턴은 손재주가 좋아서 발명을 많이 하고 특허를 받는등 그의 인간성과 재주는 매우 뛰어나다. 그는 밑으로 8남매를 두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나 라는 인물은 그중 넷째딸의 아들이고 바로 스타인 백 자신이다.

새뮤얼 해밀턴과 그의 가족들과 어울리는 애덤은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또한 애덤의 중국인 하인 리도 애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한편 쌍둥이 형제 아론과 칼은 구약 성서의 아벨과 카인처럼 서로 대립되는 성정을 지닌 채 자란다.

아론은 애덤을 닮아서 선하지만 칼은 사악한 쪽에 가깝다.

애덤은 자연히 아론을 좋아하고 칼을 멀리 한다. 칼은 자기를 무턱대로 냉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론에 대한 질투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살아서 유곽을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론에게는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중 콩 장사를 하여 번 돈을 아버지에게 선물로 전하려다가 거절을 당하자 홧김에 어머니에 대한 사실을 아론에게 알린다.

아론은 어머니의 타락한 생활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어릴적 부터 사귀어 왔던 에이브라와 일방적으로 절교하고 군에 입대한다. 어머니 케이트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이 애덜이라는 늙은 창녀에게 들키고 이를 조라는 하인을 통해 사실을 감추려고 하는둥 여러가지로 불안해 하다 스스로 약물로 자살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아론에게 물려준다는 유서를 남긴다.

아론도 군에서 전사하는데, 애덤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 나머지 죄졸중으로 쓰러져서 병석에 눕는다.

그러나 칼은 이 모든 불행이 자기의 잘못 때문에 생겼다면서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애덤이 임종하기 직전, 하인인 중국인 리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칼에게 축복을 내림으로써 그를 자유롭게 하고 회생할 기회를 주라고 간청한다.

이에 애덤은 "팀셀"이라는 말을 남기고 영원히 눈을 감는다.

팀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성서에 다스릴 것이다 또는 다스려라..라는 두가지 의미로 쓰인다.

성서에서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또는 너는 죄를 다스려라..라는 두가지로 해석되는 의미를 중국인 리는 소설 속에서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로 해석해야 된다고 한다.

이 말은 결국 죄를 다스릴 수도,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인 만큼 죄를 다스리는 것은 인간 스스로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은 누구나 카인이나 칼처럼 원죄를 짊어지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갈등하고 헤맨다. 하지만 이 두 갈래 길을 선택하는 권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있다. 문제는 어느 길을 선택하는냐는 것이다. 카인이 그렇듯 칼은 결고 선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선을 자각하고 그쪽으로 가려고 한다. 선을 선택하려 애쓰는 것이다.

인간은 신의 명령이나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주인은 바로 인간이다.

결국 이러한 메시지를 존 스타인 백은 이 장대한 장편 소설에서 말하려 한다고 번역가 정희영 씨는 해석한다.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 고전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없애는 소설이자 불교적인 내 철학관과도 일치하는 소설인듯 하다.

재미있고 유익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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