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세계고전을 읽는 것이 주 목표였지만 해가 바뀐 2014년부터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에 관심이 끌렸다. 이미 집에 인터넷으로 구입되어 있는 상태였고 읽기만 하면 되었지만 워낙 15권까지 있는 대작에다 역사서이므로 소설보다 그리 재미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뜻 꺼내지 못하다가 2014년부터는 읽기 시작했다.

2014년은 독서 및 종이 모형 만들기가 주요 취미활동이 되고 있다.

물론 헬스와 골프는 열심히 하고 있고, 집에 들어와서는 주로 독서 및 종모에 주력하여 최초로 종이모형인 Bf-109를 2014년 2월 부터 4월까지 만들어 완성시켰다. 매우 뿌듯했다. 그러나 이 종이모형은 그야말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었으므로 집에 들어와 너무 피곤한 날들이 많아 매일매일 하지는 못하고 있다. 독서 또한 그래서 6개월에 걸쳐 로마인이야기 1,2,3권을 읽어냈다.

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은 로마의 건국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기간의 역사를 쓴 그야말로 역사서이다. 그러나 기존의 역사서와는 달이 문체가 부드럽고 본인의 생각을 군데군데 끼워넣어서 완전한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한 노년 역사가가 이야기 하는 형태가 많아 조금 더 부드러운 역사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소설보다는 읽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된다. 신화적 존재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트로이 전쟁에서 패하고 쫓겨난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반도로 넘어와 작은 나라를 만들고 그 이후 수많은 왕들이 나오는데, 이 형제는 아이네아스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네나스는 아프로디테와 인간 남자 사이에 태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는 신화적 존재이다.

로물루스는 형제 레무스를 죽이고 현재의 로마에 도시 국가를 만드는데 이 국가가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지어진 것이다.

이 이후로 기원전 534년까지 7대 왕을 배출한다. 그러나 그 이후 로마는 왕정을 폐기하고 공화정으로 이행된다.

왕정때는 왕과 원로원, 민회가 주 정치 조직이었고 공화정으로 갔을때는 원로원에서 집정관 두명을 두어 일년단위로 선거했다. 왕정때부터 로마는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선거로 선출하는 그야말로 극히 드문 민주화 적 사고를 가진 것 같다.

로마는 그 주위의 도시를 조금씩 정벌해가고 아피아 가도 및 여러 도시와의 연결가도를 만든다.

이 시기에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때의 그리스는 아테네, 스파르타등의 도시국가들이 이미 로마보다 훨씬 선진국의 위치에 있었다.

로마에 켈트족이 침입하고 그리스의 정세 변화가 있어서 로마는 미몽에서 깨어나게 된다.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한다.(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가 승리하고 결국 스파르타는 기운이 쇠하여 북쪽의 국가 마케도니아에게 넘어간다.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의 왕은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스이다.

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2는 한니발이라는 카르타고의 명장이 로마를 뒤흔들고 이를 결국 물리치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로마가 국토를 조금씩 넓혀가던 시절, 시칠리아 섬은 그 동쪽은 로마의 속령으로, 서쪽은 아프리카의 강국 카르타고의 속령이었다.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에 상륙하여 완전한 지배를 원했고 로마와의 전쟁을 시작하는데 이것이 제 1차 포에니 전쟁이다.(기원전 264년~242년)

여기서 로마가 승리한다. 그래서 시칠리아를 완전 속령으로 삼게 되고 세제, 선거제, 군제를 개혁한다.

카르타고의 사령관 하밀카르의 아들인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에 에스파니아를 무대로 활동하다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하게 된다. 이것이 제 2차 포에니 전쟁이다.(기원전 218년~202년)

한니발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부대를 이끌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한다. 티치노, 트레비아 화전(기원전 218년), 트라시메노 회전(기원전 217년), 칸나이 회전(기원전 216년)으로 로마군은 참패한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남부 도시들을 공략한다. (기원전 213년)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카르타고 본국에서의 보급문제로 한니발의 기세는 조금씩 꺾이게 된다.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이 에스파니아를 출발하여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갔으나 기원전 207년 전사하고 스키피오라는 로마의 명장이 등장하여 공을 세우기 시작한다.

스키피오는 에스파니아부터 제압하고 기원전 205년 집정관이 되어 자마 회전에서 한니발을 격파한다(기원전 202년)

기원전 201년 전쟁은 종결되고 로마는 서지중해를 장악하게 된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스키피오는 이 역시 격파하고 한니발은 비티니아로 망명했다가 기원전 183년 자살한다.

스키피오는 반대파에 의해 착복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고 기원전 183년에 사망한다.

로마는 기원전 171년~168년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으로 마케도니아를 격파하고 4개 자치국으로 분할한다.

기원전 149년 제 3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여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 손자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에 의해 카르타고는 멸망한다.

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한니발을 격파하고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의 세력은 급속도로 커진다. 아프리카 뿐 아니라 마케도니아도 격파하여 영토를 크게 넓혀 그야말로 승자의 축제 분위기가 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재판시 스키피오를 변호했던 그라쿠스 집안에 스키피오는 딸 코르넬리아를 시집보내고 그라쿠스 집안에서 낳은 아들 티메리우스와 가이우스가 호민관으로 활약한다.

호민관은 집정관 원로원 민회 이외의 평민을 대변하는 평민의 장으로 여기서 이 두형제는 개혁을 실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반대파들에 의해 이 두형제는 모두 암살과, 자살함으로써 개혁은 완성되지 못한다.(기원전 121년)

이어서 마리우스가 기원전 119년 호민관에 취임하고 이어 집정관이 되어 군제 개혁에 착수한다.

기원전 90년 동맹시 전쟁이 반말하여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

기원전 88년 술라가 집정관에 취임하는데 술라와 마리우스의 대립으로 로마는 혼란에 빠진다. 술라의 그리스 원정중에 집정관 킨나와 마리우스가 로마를 장악하고 술라와의 투쟁이 격화된다.

마리우스가 사망후 킨나가 이탈리아 반도내에서 독재를 시작하지만 술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스의 반란군들을 정벌한다. 킨나는 부하에게 암살당한다.

기원전 83년 술라는 이탈리아반도로 복귀하려하지만 정규군이 대항하고 이 전투에서 술라가 이기면서 다시 돌아와 독재관이 되어 개혁을 단행한다. 술라의 개혁은 원로원의 강화였고 보수주의자였던 술라는 호민관의 특권을 많이 줄였다.

술라는 깨끗하게 독재관을 내어놓고 일반인으로 돌아가 1년후에 사망한다.

술라사후 술라가 이룩한 원로원 중심체제는 붕괴하는데 이는 친 술라파에 의해 자행되었다.

이당시 반 술라파는 레피두스, 세르토리우스, 그리고 카이사르였고 친 술라파는 루쿨루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였다.

반술라파였던 레피두스의 군사반란은 폼페이우스 군대가 타도했고, 에스파니아로 도망갔던 세르토리우스도 폼페이우스 군대가 제압하게 된다.

기원전 73년~71년 노예 투사였던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는 크라수스가 제압한다. 기원전 70년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가 집정관에 취임하고, 폼페이우스는 해적을 소탕하고 미트라다테스 정벌을 하며 다마스쿠스에 입성하여 기원전 63년 로마는 오리엔트 평정을 완성하고 지중해 전역이 로마의 패권하에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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