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기며 읽은 고전 소설은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부활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역작으로 1899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네휼류도프와 까츄사와의 사랑과 애증을 그린 소설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귀족계급에 착취당하는 노동자, 농민, 하층민의 애환과 그러한 상황과 제도를 바꾸려는 한 귀족의 노력과 좌절, 깨달음을 그린 사회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러시아 귀족가문의 아들로 공작 작위를 갖고 있는 상류사회의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여름 휴가때 고모 집에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여기서 고모 집의 양녀 까츄사 마슬로바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마슬로바는 하위계층의 딸로 고모가 양녀로 키웠던 하인 노릇을 하는 매력적인 여자였다.

당시에는 진실한 사랑을 했고 마슬로바는 임신까지 했으나 군대로 향하는 네흘류도프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한 순간의 하층계급과의 사랑이라는 것으로 치부하며 다시 상류사회의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던 네흘류도프에게 마슬로바는 이미 기억속에 없었다.

군대로 가는 기차역에서 임신한 몸을 이끌고 네흘류도프를 찾아가는 마슬로바. 그러나 끝네 그를 보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아이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때부터 마슬로바는 창녀의 길로 접어든다.

창녀의 생활을 9년동안 지속하던 어느날 여관집 주인부부의 꾐에 빠져 창녀촌에서 여관으로 마슬로바를 불렀던 한 상인에게 수면제를 주었다가 그 상인이 사망하자 여관집 주인부부와 마슬로바는 체포된다.

억울한 누명을 쓰로 재판장에 들어선 마슬로바와 귀족 신분으로 이 재판의 배심원으로 참석한 네흘류도프는 운명적으로 만나지만 마슬로바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슬로바를 알아본 네흘류도프는 심한 충격에 빠지고 재판의 결과가 시베리아 유형으로 확정되자 과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마슬로바가 창녀로 타락했고 또 재판도 엉터리였다는 자괴심으로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네흘류도프는 자기가 상속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또한 변호사를 선임해서 마슬로바의 상소를 위해 페떼스부르그의 이모를 찾아가 그곳의 귀족들을 만나 백방으로 노력한다.

네흘류도프는 마슬로바 뿐만 아니라 다른 억울한 죄수들의 부탁도 들어주고 여러 정치범들의 부탁도 들어주는 이른바 하층계급의 구원자, 전도사 노릇을 하게 된다.

또한 마슬로바와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가 사는 집을 처분하고 시베리아로 유형길에 오른 마슬로바를 따라가며 그녀에게 자기의 결심을 알린다.

마슬로바는 유형길에서 정치범들과 같이 가게 되고 여기에서 시몬손이란 정치범이 마슬로바를 사랑하게 되어 청혼을 받는다.

시베리아에 도착하여 마슬로바의 탄원서가 황제에게 전달되어 유형이 아닌 시베리아 근처에서 이주해서 살라는 통지가 전달되었지만 결혼하자는 네흘류도프의 간청을 마슬로바는 물리치고 떠난다.

마슬로바는 진정 네흘류도프를 사랑해서 그의 행복을 위해 놓아준 것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영국인 여행자와 함께 시베리아 감옥을 둘러보다 그날밤 성경속 말씀을 다시 되새기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즉 복음서에 나와있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상류층과 하류층이 모두 사는 방법이고 두 계층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고 깨달으면서 이 대소설의 막은 내려진다.

참으로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소설이었다. 어찌보면 네흘류도프와 내가 너무나 공감하는 면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층민을 위해 노력하고 선의를 베풀려고 해도 하층민들은 그동안의 핍박으로 상류층을 믿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을 적응하면서 살려고 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상류층의 노력은 그들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닌가...

위대한 번역가인 이대우 작가의 말을 빌어보자.

마슬로바와의 만남은 네흘류도프 자신의 무절제한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지만 후회와 자기반성의 시간에도 네흘류도프의 내면에서는 진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이기적 자아와 마슬로바를 타락시킨 가해자로 스스로를 자각하는 이타적 자아가 고통스럽게 충돌한다.

또한 이소설은 일곱번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강조하며 계급간의 호해을 요구하는 톨스토이식 교훈의 실천가로 네흘류도프를 그리고 있다.

마슬로바는 현실의 희생자이긴 하지만 교활하지 않고 신실하며 천성적으로 착하고 욕심없는 민중적 특성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보상이 아니라 네흘류도프와의 진정한 화해뿐이었다. 각자의 길에서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는 완전히 부활한 존재들이며 작가는 이 두 주인공을 통해 민중들이 진정으로 부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다.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소설...역시 감명깊게 읽었다.

백년전에 고민했던 톨스토이의 사상이 아직도 우리들 현실에서 지속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정 (2013.1.20~3.20)  (0) 2013.03.21
사랑(2013.1.6~1.19)  (0) 2013.01.2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2012.6.1~10.14)  (0) 2012.10.17
적과 흑 (2012.2.20~2012.6.3)  (0) 2012.06.06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12~2012.1)  (0) 2012.01.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