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독파이후 다시 잡아든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지난번 7편까지 읽었었다. 꽤 재미난 역사 서술서이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일대기 총사이다.

 

네로의 자결이후 AC 68~97년사이,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네르바 까지 총 7명의 황제가 등극한다.

네르바 이후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수스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까지 5명을 오현제라고 칭한다.

 

* 갈바 황제 (68.6~69.1)

네로가 죽고 에스파니아 주둔군이 갈바를 황제로 옹립. 72세 고령, 원로원 승인. 수도 로마출신의 명문 귀족으로 속주(에스파니아)총독을 지내어 사람들이 황제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유일한 인물. 게르마니아 병사들은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천. 갈바는 아들이 없어서 30세 피노를 양아들로. 1월 15일 피소는 살해되고(오토가) 갈바도 오토가 살해함. 오토가 제 일인자가 됨.

 

* 오토 황제 (69.1.15~4.15)

37세. 네로보다 네살 위였고 네로는 오토의 아내  포퐈이어를 사랑, 오토를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으로 보냈다. 오토가 황제가 되었을때 이미 갈바에 반대해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천하는 게르마니아 라인군단들이 로마로 향하고 있었음. 도나우군단은 오토 지지. 비텔리우스의 3개군단과 오토가 이끄는 이탈리아군, 도나우군단, 브리타니아 에스파니아에서 온 군단이 전투.

제 1차 베드리아쿰 전투(69.4.15) ; 서로 죽고 죽이고 완전 엉망진창 전투. 오토 진영 항복, 오토는 도나우군단 도착하기전에 자살.

* 비텔리우스 황제 (69.4.16~12.20)

54세. 황제가 되자 오토 진영 백인 대장들 모두 처형, 근위병 모조리 해고. 라인군단 병사들을 근위대에 기용. 비텔리우스를 반대하는 베이루트 회담의 세 주역 ; 베스파시아누스, 무키아누스(시리아 총독), 알렉산드로스(이집트 총독) 이들은 베스파니아누스를 황제로 추대.

알렉산드리아, 마이사레아, 안티오키아의 여러 군단들이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추대. 비텔리우스는 유유자적, 라인군단들 모두 로마에 눌러앉음. 베스파시아누스는 이집트에. 무키아누스는 이탈리아 진격부대,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는 유대전쟁(유대반란) 평정을 위해 예루살렘 공략.

도나우군단 다시 이탈리아로. 라인군단과 다시 붙음.

제 2차 베드리아쿰 전투(69.10.24) ; 도나우군단 승리. 비텔리우스 살해됨.

무키아누스 로마 입성, 치안에 주력.

바타비족(현 네덜란드)의 반란. 지도자는 율리우스 키비리스(저지 게르마니아군 보조 부대장). 베스파시아누스 지지함.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 확실해지자 로마군 전체에 대해 반기를 들고 갈리아제국 창설(69~70).

유대인 폭동, 전쟁(66~73)

"정복자 로마인은 피정복자들을 동화시켜 로마제국이라는 공동 운명체의 일원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그리스인도 에스파니아인도 갈리아인도 북아프리카인들도 로마의 동화정책에 찬동하고 참여했는데, 유독 유대인만은 일신교를 이유로 동화를 거부했다. 동화를 거부했을뿐만 아니라 신권정치 수립을 끝까지 고집하고,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로마에 끊임없이 반발했다."

예루살렘 유대인의 폭도, 케스티우스(시리아 총독)이 정벌하러 갔으나 패배, 병사함. 네로는 무키아누스를 임명, 베스파시아누스 기용, 유대군 요세푸스 체포(후에 로마군편이 되어 유대전쟁 역사책 씀). 요세푸스는 후에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된다고 예언하여 살아남음.

그후 무키아누스는 이태리로, 베스파시아누스는 황제로 추대되고 이집트에 대기. 아들 티투스는 유대인 반란 계속 진압

네로가 주가 베스파시아누스는 예루살렘 공략을 미루다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에 이어 자신이 황제로 추대되자 아들 티투스에게 다시 예루살렘 공략 명령. 5개월에 걸친 격전끝에 예루살렘 함락. 마사다 요새도 함락. 73년.

 

*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69.12.21~79.6.24)

60세.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오기전 무키아누스의 선정. 속주국 반란을 다 용서해줌.

황제법 시행~아들에게 권력 물려주는 법. 원로원 찬성. 황제의 권한 대폭 상향, 원로원, 민회의 역할 다운.

콜로세움 건설, 재정재건.

79년 병으로 세상 떠남. 선정 베푼 왕.

 

* 티투스 황제 (79.6.24~81.9.13)

39세. 베스파시아누스의 첫째 아들.

거듭되는 사로고 점철;;

1. 79.8.24 ; 베수비오 화산 폭발. 폼레이 묻힘, 5천명 사망.

2. 80 ; 로마 대화제

3. 81 ; 이탈리아전역에 전염병. 티투스는 과로로 병사. 대재난의 사후처리에 밤낮으로 몰두하다 끝남.

 

* 도미티아누스 황제 (81.9.14~96.9.18)

베스파시아누스의 둘째 아들. 30세.

도미티아누스 경기장, 병사들 급료인상, 게르마니아 방벽 건설(라인강~도나우강) 542km.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카티족과 전투. 원로원에 기사계급 출신들 많이 진출토록 함. 팔라티노 언덕에 도미티아누스 궁전지음. 야간경기 개최. 브리타니아 여역 스코틀랜드 직전까지 넓힘. 다키아족 침입(세르비아, 루마니아 지역) 격퇴.

89년. 고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 사투르니누스의 반란, 평정. 트라야누스(에스파니아 속주출신)가 고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이 됨. 퀸틸리아누스에게 교육론대전 12권을 집필케함.

공포정치 ; 법집행 엄격. 간통죄 처벌법, 사형, 추방형.

델라토르(고발자) ; 재판시 검사 역할, 상대방 목수 재산의 1/4를 받음. 원로원 고발에 집중됨. 황제가 원로원 내부의 반대파 제거에 이용함.

오라토르(변호사)

제정사상 처음으로 종신 재무관에 취임. 국세조사(재산과 병역해당자 조사), 공공사업발주(가도, 상수도), 풍기 바로잡음. 원로원(평생임기)의석 박탈할 권한.

96년 9.18  45세에 암살됨; 부인 도미티아의 해방노예 스테파누스가 암살. 첩 율리아와 합장되고 원로원은 도미티아누스를 기록 말살형(네로도 역시 기록 말살)에 처함.

네르바가 원로원 동의 얻어 황제 취임.

율리우스, 클라디우스(아우구스투스~네로)~~플라비우스(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니아누스)왕조 끝남.

 

* 네르바 황제 (96.9.19~99.1.27)

네르바 이후 5명의 황제 = 오현제.

도미티아누스 황제와 같이 집정관 지냄. 70세. 자식이 없음.

원로원 치외법권 인정하는 법률 성립시킴. 치세는 선정.

입양 형식으로 44세 트라야누스(게르마니아 방벽을 포함한 고지 게르마니아 방위군 사령관. 최초의 속주 출신 황제)를 후계자로.

1년 4개월후 자연사.

네르바가 오현제에 포함된 이유는 후계자를 트라야누스로 고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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