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일찍 기상했다.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영주 부석사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다.

오전 7시에 아내와 차를 몰고 경북 영주로 출발했다. "부석사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를 해보기 위함이었다~^^

차를 몰고 난생 처음 영주로 출발하였다. 그 코스는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앙 고속도로로 바꿔타는 것이었다.

주로 충북 단양, 경북 영주, 안동쪽으로 가는 차량들이 이용하는 도로로 너무나 한가했다.

가는 도중 단양과 영주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영주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영주는 풍기를 시작으로 넓게 자리잡은 도시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소수서원과 부석사는 풍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풍기의 순흥면에 있는 유명한 묵밥집에 들어갔다. 허기진 배를 채울겸 아침식사겸 이었다.

조용한 한옥을 식당으로 개조했다.

순흥면은 지금은 작고 아담한 마을이지만 순흥 안씨의 본거지이고 안향의 고향이기도 한 역사깊은 마을이었다.


묵밥은 조밥이었다. 묵은 메밀묵으로 구수한 메밀맛이 일품이었다.

반찬은 김치 일색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웠지만 묵밥이라 금방 내려간 것 같다.

날씨가 꽤 추웠다. 덜덜 떨렸지만 방은 따뜻했다. 옆자리에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과 같이 먹었다.


묵밥집을 나와 풍기쪽으로 더 들어가니 소수서원이 나타났다.

소수서원은 안향을 기리기 위해 주세붕이 세운 서원으로 조선시대의 사립 대학과도 같은 곳이다.

여기에서 유생들을 가르치고 수많은 인재를 키워냈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명종 5년(1550)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중종 39년(1544)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제사지냈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붕을 더하여 제사지냈다.

서원의 건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하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있다. 서원의 일반 배치가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동·서재를 두는 것인데 비해, 소수서원은 현판의 이름으로서 구분하였다.

사당은 명륜당의 서북쪽에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있다. 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절인 숙수사가 있었는데,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안향은 고려말 불교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 주자학을 들여온 학자로 안향을 필두로 조선시대의 유학사상이 시작되었다.

유학은 불교와 약간의 접목이 있었지만 안향의 주자학은 불교를 완전히 배제한 철두철미한 유학으로 인간중심의 철학이다.

사후 세계는 관심이 없고 현재의 인간의 덕목을 가르치는 사상이었다.

군신유의, 붕유유신등 유학사상은 조상을 기리고 부모께 효도하고 스승을 공경하는 인간다운 예를 주로 가르쳤다. 인간은 훌륭하게 키웠지만 실학에 약해 조선의 발전을 저해하기도 했던 것 같다.

소수서원 표를 사서 들어가는 길목이다

아내의 뒷모습이다.

날씨가 꽤 추웠다.

소수서원 입구에서 한컷~

날씨가 추워서 좀더 두껍게 입고 올걸...후회했다.

그러나 하늘을 쾌청했다.


소수서원 입구의 개울이다. 건너편 벽에 주세붕이 새겨놓은 한문이 보인다.

그때부터 자연경관 훼손을 했었다 보다~^^



소수서원 내부이다.

여러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각 건물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었다.

지금의 대학 캠퍼스 정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공부가 절로 된 듯 하다...


건물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공부를 하고 제를 올리는 공간같았다.


해시계가 있었다. 당시의 시간을 이렇게 측정하고 수업시간을 정하지 않았을까...

그당시 학생들도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ㅋㅋ


건물 내부에 안향과 주세붕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우리나라 유학의 선구자인 안향과 그를 기렸던 주세붕~

주세붕은 당시 풍기 군수였다고 하고 안향은 영주출신이었다고 한다.


소수서원 정경이다.

지방대학 캠퍼스 모습인 것이다.


소수서원 뒷문을 나오면 박물관과 선비촌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상당히 깨끗하고 아름다운 개울과 주위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왔다.


소수서원 옆의 박물관이다.

너무나 현대적이라 비교가 된다.

이곳에는 영주의 유적들과 주자학 유학 실학에 대한 조선시대 학문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되어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탁본을 직접 해보는 곳이 있었다.

아내와 같이 해보았다.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도 해보고 나니 즐겁고 좋았던 것 같다.


박물관 관람후 나오는 길에 건물 벽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네모난 구멍사이로 멋지 나무가 보였다.

마치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선비촌의 모습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있었던 마을을 재현해놓았다.


선비촌을 나와 차를 몰고 부석사로 향했다.

부석사 주차장은 비교적 한가했고 멀리 눈쌓인 소백산맥이 장엄하게 보였다.

주차장을 벗어나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이다. 아직 나무들이 앙상한 겨울날씨지만 날이 따뜻해지면 멋진 가로수길이 될것 같았다.

부석사는 신라시대 문무왕때 창건된 고찰로 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이다.

올라가는 길에 절의 위치를 표시하는 당간지주가 눈에 띄였다.

부석사 입구의 천왕문이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계단이 하도 많아서 숨가쁘다.

부석사 입구에 들어서면 공중부양하는 부처님 다섯분이 건물틈 윗쪽으로 보인다.

우리는 운좋게도 그것을 설명하는 분 바로 뒤에서 그 설명을 듣고 보니 와~역시 부처님 공중부양이 보였다.

참으로 신기했다. 뒤의 무량수전 색깔과 어우러져 법복을 두른 부처님 다섯분처럼 보인다.

오래된 절이라 신라시대때의 석탑이 여럿 있었다.


여기가 바로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이다~

배흘림 기둥이 어떤것인지 몰랐지만 역시 운좋게도 단체관광을 온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분 뒤에서 듣고서야 배흘림 기둥이 오랜시간 절의 지붕을 지탱하느라고 배가 불룩한 기둥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둥에 기대서 밑을 내려다 보면 산밑으로 너무나도 멋진 풍경이 들어온다.

저녁에 노을을 보면 그렇게 멋지다는데...아쉬웠지만 오전의 이 풍경도 너무나 멋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의 모습니다.

배흘림 기둥들이 천년 역사를 지탱해주고 있다.

아내도 역시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밑을 바라다 보고 있다.


저멀리 소백산맥의 위용도 보인다. 너무나 멋진 풍경이고 정말 아름다운 아담한 절이다.

부석사를 나와 영주의 명물인 한우를 먹기 위해 한우마을에 갔다.

우리는 갈비살을 시켜서 실컷 먹었다.

정 도너츠도 유명해서 가보았으나 때맞춰 단체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기다려서 그냥 나왔다.

이로써 영주 부석사 관광을 모두 마치고 다시 차를 몰고 귀경했다.

너무나 졸려서 서울에 오는 동안은 아내가 운전했다.

오랜만에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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